조선일보의 만보산 사건 허위·왜곡 보도 韓·中 민간인 수 백명 사상자 발생

기사입력 2019.03.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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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만보산 사건 허위·왜곡 보도 ·민간인 수 백명 사상자 발생

 

 박인식(KCJ국제관계연구소)박사  

 

만보산(萬寶山사건은 1931 7 2 중국 지린성(吉林省창춘현(長春縣완바오산 지역에서 조선농민과 중국농민 사이에 일어났던 충돌 사건이다.

 

관동군 특보기관은 일본 중앙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재만 조선농민을 이용하여 대륙 침략을 위한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바로 만보산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만보산(완바오산萬寶山) 지린성 창춘(長春)에서 서북쪽으로  3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지린성 정부의 국민정부 외교부에 보고된 것에 의하면사건 개요는 1931 4 16 일본관헌이 비밀리에 매수한 장농도전공사(長農稻田公司) 경리 학영덕(郝永德하오융더) 이통하 (伊通河이퉁허) 동쪽 삼성번(三姓堡싼싱바오일대 소한림(蕭翰林기슭에 있는 만보산 지역의 미개간지  3 차지(借地) 것을 다시 조선농민 이승훈(李昇薰 8명이 10 기한으로 조차계약을 맺어 개간을 한다.

 

그런데 조차계약 조항 중에는 “조지(租地)계약은 창춘현(長春県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만약에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하게 되면 무효라고 명시되어 있었다그러나 학영덕은  정부의 허가를 받기 전에 조선인 이승훈(李昇薰등에게 전조계약(轉租契約) 함으로써 위약으로 분쟁의 소지가 있었다.

 

이승훈 등은 만주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재만 조선농민을 만보산 농장으로 180 명이나 불러들었다그때 학영덕은 순수한 조선인 농민에게 이통하(伊通河) 절단하게 하고 불법으로 계약한 토지와 이통하 사이에 수로를 개착하게 하였다중국인 지주들과의 분쟁이 야기되었지만조선농민들의 수로개척은 일본 장춘영사관 경찰의 보호 아래 강행되어 6 말에는 거의 완성될 단계에 이르렀다그런데 여름이 닥쳐오면서 이통하의 범람을 우려하던 중국인 지주와 현지 주민  400명은 7 2 수로공사 현지로 달려와 개착한 수로를 매몰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마침내 현장에 있던 조선인 농민일본 영사관 경찰과 중국인 지주주민 사이에 일대 충돌이 일어났다  점차 중일양국 경찰이 서로 증원되고 약간의 총격전도 벌어지게 되면서 분쟁도 격화되어 갔다그러나 다행히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은 중국인 지주와 주민들이 일단 철수하면서 진정되었다.

 

한국 근대언론의 치욕스런 역사 찌라시 같은 허위 지면 아픈 역사의 그림자

 

그런데 일본 관동군은 창춘 영사관측을 이용하여 조선일보 지린성 창춘지국장 김이삼((金利三본명: 김영석동아일보 지린특파기자 겸임) 일본영사 다시로· 시게노리(田代重德) 전달해  일방적인 주장 내용을 확인도 하지 않은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의 양사에 특급전보로서 송부했다.

 

72 우선 조선일보는 호외 발행했다 표제는 중국 관민 800 명과 200동포(조선인)충돌 부상대고개  일중관헌  시간여 교전 - 급박한 동포의 안위전투준비중 등이었다김이삼의 송부기사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허위기사로서 센세이션한 형태로 보도한 것이다이로 말미암아 만보산 사건은 조중 민족간의 단순한 일이 아니라 중일의 국제문제화가 되고 말았다.

 

당시 동아일보와 맹렬한 경쟁중에 있던 조선일보는 특보로서 대서 특필하여 조선민중의 여론을 들끓게 하였다처음  사건이 보도되자 신속한 보도를  조선일보는 세평에서 완전히 동아일보를 눌러 버렸다이렇게 되자 4일에는 동아일보 같은 기사를 실었다.

 

만보산 기사가 보도되자 이튿날 조선일보 조간을 받아본 이리(裡里지방(지금의 익산)에서는 당장중국인 박해사건이 일어 났다조선내 신문들은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오보를 하면서조선내에 거류하는 중국인을 파괴하는 운동을 도발시켰다이리에 이어서 인천을 필두로 경성·원산·평양·부산·대전·천안 각지에서 수천 명의 조선인들은 중국인 배척운동이 일어났다.

 

평양과 부산과 천안에서는 대낮에 중국인 상점과 가옥을 파괴하고 구타·학살하는 사건이 며칠간 계속되는  잔인한 폭력사태로 확산되었다일제는 매수한 김이삼을 통해서 조작된 기사를 보도하게 하였고부산과 천안에서 불량배를 매수하여 폭력행위를 조장하였다며칠  동아일보 등이 오보임을 알리고 진정을 호소하는 보도로 7 10 이후로 약화되었다조선의 민간신문사측에서는 신속히 진상조사와 동포위문을 겸하기 위해 조선일보는 신영우동아일보는 서범석 양기자를 각각 창춘에 특파한  관계 각처를 방문하였다.

[편집국 기자 motokim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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